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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y알래스카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면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한 알래스카 전문가 입니다. "인생을 시작하려면 알래스카를 가라"는 말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알래스카는 무한한 도전과 가능성을 갖고있는 마지막 남은 미 개척지이기도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알래스카" 자연속의 삶이 그립다면 언제라도 알래스카로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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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7 23:06 알래스카 자유게시판

오늘은 교도소의 식단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교도소와는 매우 다른 식단으로 꾸며져 있는데

한국은 양이 부족해서 배를 곯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미국 교도소의 식단은 그야말로 굶주림만 겨우 면할 정도로

메뉴가 정해져 있습니다.

 

1식 3찬 이런 건 아니고, 식빵 한 조각, 쌀가루 죽(수프) 아주 조금

사과를 갈아서 쥬스 같은 걸 손바닥 반만큼 줍니다.

제일 난감 한 요일은 바로 토요일과 일요일 점심입니다.

주말 점심 식단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인데, 식빵 두 조각

(굽지 않은 날 것 )그리고, 터키(칠면조) 슬라이스 한 장을

주는데 , 종이처럼 아주 얇은 슬라이스 한 조각이라 식빵

가운데 이 슬라이스를 넣고 먹으면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빨 사이에 다 끼고 말 정도입니다.

 

원주민 구치소는 냉장고도 있어서 고기 종류와 먹을거리는

넘쳐 나지만, 알래스카 교도소의 식단은 정말 간단합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수용자들이 다들 얼굴이 험악해집니다.

 Commissary에서 각종 과자류와 미국 라면을 팔고 있지만

너무 달아서 허기를 면하기에는 너무 많이 부족한 상태이며

허기를 면할만한 음식은 거의 팔지 않습니다.

제일 무난하고 부담 없는 게 바로 미국 라면인데 , 크기가

우리나라 라면의 절반만 하며 가격은 55센트입니다.

 

갱들 보스는 트레이(식판)를 두세 개씩 쌓아 놓고 식사를 하는데

다들 부러운 눈치로 쳐다보다가 갱 보스가 음식을 남기면

얼른 다가가 먹어도 되냐고 허락을 맡은 다음 허락을 하면

가져와서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면 더욱 배가 고파지니 운동을 하는 이들이

60여 명중 불과 5 명 이내입니다.

저야 머릿속이 복잡하니 ,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죽어라 운동을

하고는 했습니다.

 

제가 운동만 하고 있으니, 어느 흑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커피 한잔

줄까? 하더군요.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제 컵을 가지고 갔더니, 우리네

용각산 스푼 같은 걸로 두 스푼을 주더군요.

여기서는 정말 금 커피입니다.

커피 향이 퍼지면, 사람들이 몰려와 한 입만 달라고 통사정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주일 동안 커피 두 번을 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파에 속해 있지 않은 폭력범 하나가 다가오더니

저에게 홍차 티백을 하나 주더군요.

의외로 녹차보다는 홍차를 좋아하더군요.

홍차도 한 번에 다 마시지 않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얼른 다시 

티백을 꺼내서 보관했다가 다음에 다시 우려서 차를 만들어 먹고는

합니다.

 

저도 홍차를 얻으면 두세 번 정도 우려서 마셨습니다.

세 번째는 홍차 냄새가 거의 나지 않지만, 그래도 홍차 기분을 내면서

사색에 젖기도 했습니다.

Reading Glass (돋보기)는 단, 한차례 교도소 측에서 주는데 신청을 하면

일주일 후에나 받아 볼 수 있어 일주일 동안 저는 책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서류 작성할 때 , 남의 걸 빌려서 작성을 하고는 했습니다.

눈이 나쁘신 분은 필히 지인에게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하시는 걸 추천

합니다. 안경이 없으면 다양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기에 상당한

불편을 겪게 됩니다.

 

몽족을 만났는데 이는 소수민족인데, 라오스에 사는 몽족이었습니다.

베트남에도 많은 몽족이 있었는데 , 미국에서 전쟁 시에 많은 도움을 받아

나중에 철수를 한 뒤에도 몽족들을 데리고 와 영어 교육과 직업 교육을

무상으로 시켜주어 미국에 정착을 시켜 주었습니다.

몽족인 Lxng Mong 은 부인과 아이가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었는데,

몽족이 미국인 변호사와 소통이 잘 안되어 아주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일단, 중간에 통역인이 있어야 변호사를 선정하고 재판에 도움이 될 서류들을

준비를 할 텐데 몽족 어를 하는 통역인이 없어서 아주 애를 먹고 있더군요.

 

제가 수용시설에 들어서니, 엄청 반가워하더군요.

그러더니,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는데, 누구도 믿지 마라, 친하게 다가오는

이를 조심해라, 음식 보관을 잘해라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나중에는 저와 함께 이틀을 룸메이트로 같이 지냈는데, 경찰이나 재판장에 가면

절대 영어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게 , 자신을 지키는데 정말 필요한 사항이라며 당부를 하더군요.

병원이나 경찰과 대화를 할 때에는 어설픈 영어보다는 , 못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사실입니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괜히 영어를 아는 척하면서 잘 못 대답을 했다가는

나중에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꼭, 누구나 기억하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15번 방 T (TOP 이층)에서 머물렀는데, 1층에 있는 백인 하나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 밤새 뒤척이며 서너 번이나 화장실 물을 내리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자지 못해 결국, 방을 옮겨 달라고 해서 27 T로 옮겨서 밤에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철문 닫히는 소리와 Check count ,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이렇게 삼대 사운드입니다.

수용소 내의 모든 문들은 통짜 쇠로 된 문이라 열고 닫힐 때 , 엄청난 큰 소리가

들리게 되어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서 아무리 깊은 잠에 들었다고 할지라도

깰 수 박에 없습니다.

Check count라는 소리를 Offcier 가 외치면 모든 이들이 행동을 멈추고 감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시간부터는 자유가 억압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감방 안에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만큼이나 엄청나게

큰데, 모든 냄새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삼대 사운드에 대해 다들 아주 경기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사운드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최소 6개월 이상을 여기서 지내야

만성이 된다고 합니다.

 

두 명이 지내는 감방 안의 풍경은 이층 침대 하나,  스테인리스 변기,

 작은 시멘트 책상과 연결되어 있는 세면대 하나,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평수는 약, 두 평 정도 됩니다.

사물함이나 그런 건 없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는 인스펙션이 실시가 되어 변기부터 시작해서 모두

광이 날 정도로 닦고 또, 닦습니다.

그래서, 늘 수용 시설이 광이 나고 위생 시설이 아주 뛰어납니다.

내일은 교도소 내의 성과 지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스펙션이 아주 중요합니다.

팔에 살짝 스크레치가 나서 간호사한테 받은 일회용 밴드와

전혀 대화를 나눠 보지 않았던 수용자가 슬며시 운동을 하는 내게 건네준

홍차 티백.

 

교도소 내에 입소할 때 , 내가 지녔던 개인 물품 리스트 

 

 1회용 설탕인데 10 봉지가 한 세트로 가격은 50센트. 이 설탕 역시

금 설탕이라고 부를 정도로 귀합니다.

posted by 알래스카 여행작가 ivy알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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