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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y알래스카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면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한 알래스카 전문가 입니다. "인생을 시작하려면 알래스카를 가라"는 말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알래스카는 무한한 도전과 가능성을 갖고있는 마지막 남은 미 개척지이기도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알래스카" 자연속의 삶이 그립다면 언제라도 알래스카로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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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26. 04:41 알래스카 자유게시판

영화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로 구분이 되는데,

잘 된, 독립영화는 극장에 걸리기도 하며, 각종

영화제에 초청이 됩니다.

독립영화는 감독의 입맛에 따라 비상업적인 요소가

많은데 , 다큐멘터리도 독립영화에 많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같은 경우 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이 되어

선을 보이기도 했지요.

 

보통 독립영화라 하면 단편영화를 연상케 하는데,

아무래도 소규모의 제작비로 만드는 거라 대략 20분

내외입니다.

영화라는 컨텐츠에 발을 디디면, 쉽게 빠져나오기가

힘이 듭니다.

거의 마약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도 하는데,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오고 유학도 다녀오고, 영화 아카데미도

졸업하는 등 스펙이 정말 빵빵하기도 합니다.

영화 아카데미는 배우는 곳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곳이기도

한데, 자신의 역량을 다해 각종 실험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경험을 쌓는 곳입니다.

 

제가 처음 작품을 한건 필름을 이용한 작품이었는데

제목은 " 가을 "이었습니다.

연출과 시나리오, 콘티 등을 직접 그려서 첫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필름값과 인화, 현상, 편집, 녹음 등 들어가는 돈이 

상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디지털로 작업을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가편집을 하기도 합니다.

일단, 영화를 제작하려면 스텝이 필요한데 한번 마음이

맞으면 , 향후 작품들도 모두 같은 스텝으로 가는 게

일상적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단편영화를 상영할만한 곳이 상당히

드물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남산에 있는 애니메이션 센터를 빌려서

상영을 할 수 있었는데 , 보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모두 아는 사람들뿐이었지만, 그때 그 뿌듯함과 감동은

정말 오래갔습니다.

그런데, 늘 영화를 만들어 상영을 할 때, 상당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늘 부족해 보이는 면들이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뒤늦은 후회를 하고 다시 정리를 하고, 다음 작품 때는 정말

잘해야지 하면서도 다음 작품을 보면 또 후회를 합니다.

이점은 아마 영화에 한발 걸치신 분들은 다들 쉽게 이해를

하실 겁니다.

 

그리고 , 배우들도 한번 같이 한 배우면 차기 작품 때도 시간이

맞으면 같이 하게 되는데 , 제 작품 단골 배우는 당시 대학로

연극을 하는 중대 연영과 출신 남자 배우였습니다.

늘 대우도 제대로 못해줘서 아직도 미안한 감정만 남아 있으며

여배우도 마찬가지로 연극인을 섭외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워낙, 촬영장 분위기가 열악하고 , 대우도 못해주고 고생만 시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안한 감정뿐입니다.

배우 섭외는 알음알음으로 추천을 받아 캐스팅을 하는데,

연기력이 좋은 연극배우를 많이 선호합니다.

일반 이름 있는 배우중 무보수로 흔쾌하게 응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시 문성근 배우부터 시작해서 최민식 씨,

명계남 씨 등 훨훨 날리는 남자 배우는 있지만 , 여성

배우는 아주 극히 드뭅니다.

그리고, 소속사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습니다. 

한 번은 춘향전에서 나온 여배우를 섭외했는데

그 자리에서 단칼로 거절을 하더군요. 

 

프랑스부터 시작해서 많은 영화제에 출품을 했지만 워낙,

실력이 부족해 수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종교 영화제 제1회 때 , 주관을 했었고, 청소년 영화제

에서도 잠시 다리를 걸쳤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름 캠프를 만들어 영화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는데, 당시 추억이 정말 새롭네요.

당시 제가 만든 영화사 이름이 Ivy Pictures 였습니다.

영화 제작사라기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공부하면 

제작하는 모임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각종 영화제 문제로 만났던 이가 바로 박근혜 때 

강제로 잘린 전 문화공보부 차관 유진룡 씨였습니다.

당시 대통령, 국무총리, 문공 부장관등 영화제 우승자에게

줄 상 때문에 만났습니다.

저도 그때, 상이나 하나 받아 놓을 걸...ㅎㅎ(농담입니다 )

 

같이 공부하며 함께 제작을 했던 친구가 바로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김영탁 감독입니다.

그만큼 치열해서 영화판에서 살아남기가 정말 극악하고

험한 여정길 이기도 합니다.

난다 긴다 하는 친구들도 거의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

아직도 영화판에서 뒷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영화는 마약 같습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 공모 같은 데서 선택되어

제작비를 받은 적은 몇 번 있었네요.

저야 어차피 독립영화 쪽만 진행을 했었기에 남들처럼

목숨은 걸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생각대로 영화를 만든다는 그 기쁨만이 존재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영화를 하다가 광고계로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종편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PD 도 엄청 머리 아픕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로 자리가 위태롭고,

청취율 확보로 늘 머리 빠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방송계와 광고계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그런 쪽으로는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그래도 영화는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posted by 알래스카 여행작가 ivy알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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